비교문학이란?

비교문학, 새로운 세기의 新인문주의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21세기는 우리가 알고있는 낯익은 세계를 지워가며 새로운 변화의 흐름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국경의 의미는 날로 희미해지고, 여러 인종과 문화와 역사는 점점 더 복잡하게 뒤섞입니다. 자기만의 고립된 영토를 고수하던 문학과 여러 학문들, 예술장르들 사이에 서있던 오래된 벽도 더 이상 견고하지 않습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도 새로운 접합의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질적인 것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다 고양되고 풍요로운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것이 새로운 세기의 화두입니다.

두 겹의 사유, 이중의 과제

그러나 익숙한 것은 편안한 것이고, 새로운 것은 낯선 것이기에 변화는 희망일 뿐만 아니라 공포와 불안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것은 낡은 편견이기에 앞서 경험된 삶의 기억이기에, 과거를 되새김하지 못하는 무능은 우리를 새로움이라는 환상에 빠진 채 반복의 쳇바퀴를 돌리는 어리석은 자들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의 모든 변화들은 기회임과 동시에 위기라는 두 얼굴을 하고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문객을 반갑게 맞이하는 우리의 양손처럼 우리의 사유와 실천도 두 겹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옛것과 새것을, 자기와 타자를, 동질성과 이질성을 동시에 사유와 실천의 품안에 끌어안는 것―이것이 우리의 과제입니다.

비교 혹은 양손의 논리

비교문학이란 이러한 이중의 과제를 지혜롭게 풀어나갈 인문학의 새로운 길입니다. 비교한다는 것은 단순한 대조를 통해 차이와 공통성을 인식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서로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이 만들어내는 역사와 관계의 논리를 탐구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그 만남의 장(場) 자체를 새로 마련하는 창조적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 “비교하는 자”는 스스로 “비교되는 자”가 됨으로써 이 비교의 광장에서 자기를 새롭게 인식하고 갱신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비교문학은 양손의 논리가 지닌 이점과 균형감각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비교문학의 한 손에는 우리민족과 국문학이, 다른 한 손에는 다른 민족들의 언어와 정신이 들려있습니다. 비교문학의 오른손에는 시와 소설과 드라마라는 전통적 문학장르들이, 왼손에는 음악과 회화와 다른 비문학 예술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또 비교학자가 한 손에 문학과 예술이라는 미학적 실천들을 쥐고 있을 때, 그의 다른 손은 역사와 철학과 정치경제 그리고 인간 문화의 다른 영역들을 찾아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비교학자, 왼쪽에서 뛰는 심장

그리하여 학제성과 국제성은 비교학자의 기질이며 소임입니다. 엄격한 자기제한 속에서 전문화된 지식을 산출하는 근대 분과학문들의 활동 추세를 거스른다는 점에서, 또 각 나라의 국민문학 전통으로 완전히 귀속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비교학자는 내부에 존재하는 이방인과도 같습니다.

안정된 정체성을 추구하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 비교학자는 언제나 불안하고 불온하게 보이는 존재이며 비교학자 스스로도 늘 이런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문학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역사적 존재양식과 가치에 질문을 던지는 경계의 탐색자들에게 공통된 운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교문학의 이러한 학제적 성격이 분과학문 체계 이전으로의 반동적 회귀는 아니며 비교문학이 아직도 분과학문 체계 이전의 미분화와 미성숙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또 비교문학이 각 민족과 국민문학을 초월하여 아무런 민족적 기반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비교문학은 각 분과학문들에 축적된 연구성과를 비교문학적 시각에서 수용하고 연결하여 이를 보다 통합적이고 완성된 체계를 구축하는 데 이용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분과학문체계에 의존하고 있고 분과학문 체계를 보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교문학 연구가 각 민족문학의 자기이해와 역사를 완성하는데 필수불가결 하다는 점에서 국민문학(혹은 국학) 연구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비교학자는 “역사와 민족을 초월한 문학과 학문세계의 보편성”이라는 별빛만 따라 걷다가 코앞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천진한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문학과 비교문학도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지배의 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역사로부터 배웠으며, 휴머니즘이나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와 같은 보편주의적 이상들이 어떻게 계급지배나 제국주의적 현실을 외면해왔던가를 보았습니다.

때문에 비교학자는 양손의 균형감각이 은폐된 보수주의나 지식인의 기회주의로 전락하지 않도록 외부를 향한 비판의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의 두 눈과 양손이 사물과 현상을 공정하게 다루려 애쓰는 동안에도 비교학자의 심장은 늘 왼쪽에서 뛰고 있어야 한다는 것, 비교문학은 제3자가 먼발치에서 던지는 핏기 없는 논평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개입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만큼 비교학자의 정신을 긴장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비교문학, 새로운 세기의 신(新)인문주의

19세기말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국가에서 시작된 비교문학은 원래 각 국민문학들을 비교하여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실제적 영향과 수용의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자국문학사를 완성하는 데 일차적인 목표를 두고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자기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를 넘어서려는 문학적 세계주의나 각 나라의 문학과 예술에 존재하는 보편성을 찾으려는 노력, 이른바 “세계문학(world literature)”과 “일반문학(general literature)”이라는 이상이 없지 않았으나, 세계문학은 아직 유럽중심주의의 시야를 넘어서지 못했고 일반문학도 “예술로서의 문학”이라는 근대 부르조아적 관념에 대한 역사비판적 시각을 결여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비교문학은 학문 안팎의 다양한 도전과 반성 속에 변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제3세계의 등장과 비(非)서구문학의 성장은 유럽 바깥의 다양한 서사와 문학전통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여성과 소수집단의 목소리들은 문학의 이념과 문학사의 줄기를 다시 쓰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영화와 텔레비전,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와 대중문화의 확대된 힘은 비교문학이 더 이상 서구의 고전들을 중심으로 한 문학연구와 교육에 자신의 시야를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비교문학은 이러한 비판과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자신의 연구영역과 시각을 교정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비교문학의 영역은 이전의 비교문학 정의가 무색해질 만큼 넓어지고 있어, 동양과 서양의 고전문학에서 최근의 영화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비극에서 인종과 민족, 성(gender)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비교학자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인문, 사회과학의 주제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처럼 넓은 영역을 체계적으로 비교하고 비판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비교학자는 다양한 문학 및 문화이론들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하며, 관련 분과학문에서 산출된 지식들에 늘 개방적이고 학구적인 자세로 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또 여러 시대와 언어권에서 나온 텍스트들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고전어(한문, 라틴어, 희랍어 등)와 외국어 능력을 끊임없이 연마해야 한다는 숙제가 일생동안 비교학자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비교문학은 대단히 매력적인 학문이지만 결코 쉬운 학문은 아닌 셈입니다. 각 분과학문의 대가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비교학자가 되는 길은 좁고 험난합니다. 그러나 비교문학적 소양은 학제적 사고를 통해 새롭고 비판적인 지식을 산출해야하는 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다민족적이고 복합문화적인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21세기의 시민들 모두에게 필수적인 자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다양한 매체와 문화장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기 위해서,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민족문화와 정신들과 생산적으로 대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모든 이질적인 것들과의 만남 가운데 자기를 잃어버리고 수동적으로 흡수되어버리는 대신 자신을 좀더 풍요롭고 능동적인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 비교문학적 지식과 방법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비교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문제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면 “비교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나, 심지어 비교문학이라는 이름에 고수하는 것조차도 전혀 중요하지 않을 지 모릅니다. 비교문학은, 넓은 시야에서 볼 때, 새로운 환경에 처한 인문학의 갱신, 인문주의의 재부흥의 시도에 다름 아니며 이를 위한 중요한 실천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한보희, 2001년 11월 씀